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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조용한 숲마을이 던진, 선과 악의 본질에 대한 질문 -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悪は存在しない/ Evil Does Not Exist, 2024)

by 소심한리뷰도사 2025.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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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포스터

 

안녕하세요! 소심한 리뷰도사 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입니다.

 

  • 제목: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悪は存在しない/ Evil Does Not Exist, 2024)
  • 주연: 오미카 히토시, 니시카와 료, 코사카 류지
  •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 상영 시간: 106분
  • 개봉일: 2024년 3월 27일
  • 장르: 드라마

1. 영화 소개

평화로운 마을에 도쿄의 한 기획사가 정부 지원금을 타먹기 위해 글램핑 리조트를 세우려고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2024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뜨거운 찬사를 받은 작품이 한국 관객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일본의 거장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가 연출한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평온한 자연 속 마을에 닥친 외부 자본의 침투를 통해, ‘선과 악’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깊이 사유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일본의 한 시골 마을, 미즈부키를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도쿄의 한 기획사가 정부 지원금을 통해 이 마을에 ‘럭셔리 글램핑 리조트’를 세우려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위해 주민들과의 공청회를 개최합니다. 겉으로는 생태계와의 공존을 외치지만, 그 내면에는 개발과 이윤 중심의 논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연의 순리와 조화를 중시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에, 외부의 이익 중심적 접근에 불편함을 느끼고 점차 저항감을 드러냅니다.

 

특히 자연 속에서 딸과 함께 소박한 삶을 살아가던 남성 ‘타쿠미’는 이 변화가 자신의 삶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생존 조건마저 위협할 수 있음을 느끼며 내면의 갈등에 휩싸이게 됩니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큰 사건이나 반전 없이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묵직한 주제를 끌고 갑니다.
자연, 공동체, 자본, 인간의 본성, 그리고 우리가 ‘악’이라고 부르는 행위의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를, 침묵과 시선으로 말하는 이 작품은 단순한 환경 영화가 아닌 인간의 존재 자체를 성찰하게 만드는 철학적 영화입니다.

 

영상미는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아름답고, 장면 하나하나가 마치 수묵화처럼 여운을 남깁니다.
마지막 장면의 충격적인 선택은 영화 전체의 주제를 강하게 뒤흔들며 관객 스스로 질문을 품고 극장을 나가게 만듭니다.


2. 줄거리

만악의 근원인 도쿄의 한 연예기획사

 

일본의 한 조용한 시골 마을, 미즈부키.
이곳에서 타쿠미는 딸 하나와 함께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무를 하고, 샘물을 길어 오고, 사슴을 해체해 먹고사는, 도시와 단절된 듯한 소박한 일상을 지냅니다.

어느 날, 도쿄에 본사를 둔 연예기획사에서 이 마을에 럭셔리 글램핑 리조트를 지으려는 계획을 발표합니다.

이 기획사는 정부의 재정 지원금을 노려 도심인근의 자연지역을 저렴한 비용으로 개발하려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계획에 깊은 우려를 표합니다.
리조트에서 나오는 오수 처리 문제, 동물 생태계의 교란, 기존 주민의 삶을 무시한 일방적인 개발 방침 등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제기됩니다.

 

기획사 직원 타카하라와 마야는 마을 공청회에 참석하지만, 그들은 실제로 사업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으며 진정한 소통 대신 상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뿐입니다.

점점 마을 사람들과 기획사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타쿠미는 딸 하나와 함께 사슴 사냥을 나섰다가 뜻밖의 충격적인 사건과 마주하게 되는데..


3. 평가

자연에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은 선택할 뿐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는 이번 작품에서도 특유의 정적이고 깊이 있는 연출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영화는 절대 고조되지 않는 톤, 대화보다는 침묵, 사건보다는 여운을 선택합니다.


감정적인 클라이맥스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관객에게 “지켜보라”는 자세를 강요합니다. 카메라는 대체로 멀리서 인물을 관조하는 방식으로 움직이며, 빠른 컷 편집 없이 한 장면에 오랜 시간을 할애합니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자연이 갖는 웅장함과, 인간이 저지르는 사소한 악행을 냉정하고 무심하게 담아내는 효과를 냅니다.

또한, 영상미는 단순하지만 섬세하고,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소리를 적극 활용하여 인공적인 문명과 대립되는 자연의 조화로운 질서를 부각합니다.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는 제목 그대로,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언입니다.
하지만 이 문장은 곧 ‘악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리조트를 유치하려는 기획사 직원들은 악의를 품지 않고 행동하지만, 그 무지와 이기심은 결국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즉, 이 영화는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관계와 구조 안에서 비의도적 악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타쿠미와 하나의 운명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에게 해석을 떠맡기며 도덕 판단의 복잡함을 드러냅니다.

 

주인공 타쿠미는 극도로 절제된 인물입니다. 대사를 많이 하지 않고,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심지어 서사적으로 큰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영화의 주제를 상징합니다 — 자연과 공존하는 인간.

기획사 직원인 마야와 타카하라는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정당함을 가장한 폭력에 무지하게 가담하는 인물들로, 특히 타카하라는 후반부에 타쿠미와 하나를 찾으러 숲으로 들어가면서 도시인이 자연 속에서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보여줍니다.

모든 캐릭터는 명확한 설명이나 감정 변화 없이 ‘존재하는 방식’만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합니다.
이로 인해 관객은 이들을 해석하려 애쓰게 되고, 영화는 관찰과 해석의 미학을 관객에게 전가합니다.


총평하자면,〈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업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철학적 질문을 영화적 형식 안에 온전히 구현한 작품입니다.

환경 파괴, 공동체 해체, 도시와 지방 간의 격차,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의와 무지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섬세하고 날카롭게 조명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은 큰 충격을 받게 되지만, 그 충격은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 관객 스스로 도덕과 책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이 작품은 관객에게 불쾌함을 줄 수도 있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본 뒤, 머릿속을 맴도는 수많은 질문들 — “무지는 죄인가?”, “자연은 인간을 용서할까?”, “악이란 무엇인가?” —
이야말로 이 작품이 남긴 가장 깊은 인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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