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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우정의 끝에서 마주한 고독과 상실 - 이니셰린의 밴시(The Banshees of Inisherin, 2022)

by 소심한리뷰도사 2025.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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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포스터

 

안녕하세요! 소심한 리뷰도사 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이니셰린의 밴시> 입니다.

 

  • 제목: 이니셰린의 밴시(The Banshees of Inisherin, 2022)
  • 주연: 콜린 패럴, 브렌던 글리슨
  • 감독: 마틴 맥도나
  • 상영 시간: 114분
  • 개봉일: 2023년 3월 15일(국내개봉일)
  • 장르: 드라마, 블랙 코미디

1. 영화 소개

어느날 아무 이유없이 친구가 절교를 선언했다

 

아무 이유 없이 친구가 절교를 선언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느끼게 될까요?

 

〈이니셰린의 밴시〉는 1920년대 아일랜드의 외딴 섬 '이니셰린'을 배경으로, 두 남자의 갑작스런 우정의 종말을 담담하면서도 섬뜩하게 그려낸 영화입니다.

 

주인공 파우릭(콜린 파렐 분)은 매일같이 친구 콜름(브렌든 글리슨 분)과 술집에 가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남자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콜름은 돌연 파우릭과 더 이상 친구로 지내고 싶지 않다고 선언합니다. 특별한 이유도 설명도 없습니다.

 

혼란스러운 파우릭은 계속해서 그 이유를 묻고 다가가지만, 콜름은 점점 더 단호해지고, 심지어 "다시 말을 걸면 내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경고합니다.


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절교를 넘어, 폭력과 파국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작은 섬마을 특유의 고립감과 침묵, 그리고 아일랜드 내전의 은유를 배경 삼아, 인간 관계의 부서짐과 그 안에 숨어 있는 상실감을 절묘하게 풀어냅니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대조되는 인물들의 감정 붕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잔잔하지만 깊은 불편함을 느끼게 합니다.

 

특히 콜린 파렐은 소심하고 따뜻한 파우릭을 완벽하게 연기하며, 브렌든 글리슨은 무게감 있고 복잡한 콜름을 통해 "자신을 위해 냉정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고뇌"를 설득력 있게 그려냅니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단순한 우정 이야기 이상입니다.

 

이 작품은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맞닥뜨릴 수도 있는, 관계의 끝과 그 이후를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입니다.


2. 줄거리

우정의 끝자락에서 피어나는 고독의 초상화

 

1923년, 아일랜드 내전이 한창이던 시대.

 

아일랜드 서쪽 끝 외딴 섬, '이니셰린'에서 파우릭(콜린 파렐)은 매일같이 친구 콜름(브렌든 글리슨)과 술집에 들러 하루를 마감하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콜름은 갑자기 파우릭에게 말을 걸지도, 함께 어울리지도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아무런 전조도 없었던 절교 통보에 파우릭은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는 집요하게 이유를 묻지만, 콜름은 단호합니다.
"네가 지루해서다."

 

콜름은 인생의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합니다. 그는 바이올린 곡을 작곡하고, 조용히 예술에 몰두하며 죽음에 대비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파우릭과의 가벼운 잡담과 무의미한 일상이 이제는 짐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파우릭은 절교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콜름에게 다가갑니다.
그러자 콜름은 경고합니다. "다시 말을 걸면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버리겠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들렸던 위협은 현실이 됩니다.
파우릭이 다시 그에게 말을 걸자, 콜름은 자신의 왼손 약지 손가락을 잘라 술집 문을 통해 파우릭에게 던져버립니다.

 

충격에 빠진 파우릭은 점점 변해갑니다. 그는 콜름을 이해하려 하던 이전의 자신을 버리고, 분노와 절망 속에서 더 거칠어집니다.

 

동시에 파우릭의 삶에서 소중한 존재였던 여동생 시오반(케리 콘돈 분)도 섬의 좁고 답답한 삶에 지쳐 결국 섬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섬에 남겨진 파우릭은 외로움 속에서 점점 무너져가는데..


3. 평가

〈이니셰린의 밴시〉는 끝내 붙잡을 수 없는 관계에 대한, 그리고 인간 존재의 고독에 대한 가장 조용하고 아름다운 장송곡이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두 친구가 이유 없이 절교하고, 그로 인한 감정의 균열이 걷잡을 수 없는 비극으로 번져갑니다. 그러나 이 단순한 줄거리 속에는 인간 존재, 고독, 삶의 의미에 대한 놀랍도록 깊은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관계의 단절을 '누군가의 잘못'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콜름이 파우릭을 멀리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지루하기 때문", 그러나 그 이면에는 삶의 유한성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콜름은 남은 생을 '의미 있는 무엇'에 바치고 싶고, 파우릭은 그저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싶습니다.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한 두 사람은 결국 필연적으로 갈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서서히, 그리고 잔인할 정도로 차분하게 보여줍니다.
그 어떤 큰 사건보다, 한 사람의 조용한 결심이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지 절절히 전합니다.

 

마틴 맥도나 감독은 이 작은 이야기를 통해 감정의 폭발력을 극대화하는 법을 압도적으로 보여줍니다.
광활한 자연 풍경과 대조되는 인물들의 답답함, 어딘지 모르게 무력한 공기를 세밀하게 포착합니다.

특히 아일랜드 내전이 배경으로 흐르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섬 밖에서는 총성이 울리고, 섬 안에서는 조용한 인간 관계가 무너져갑니다.
내전처럼, 우정의 종말도 명확한 승자 없이 서로를 파괴할 뿐이라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콜린 파렐은 소심하고 순수한 파우릭을 절묘한 균형감으로 연기합니다.
특히 파우릭이 점차 상처받고, 변질되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하여 관객의 감정을 붙잡습니다.

브렌든 글리슨은 무겁고, 절망에 찬 콜름을 연기하며,
말보다 침묵과 눈빛으로 모든 것을 전달하는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특히 둘의 '말하지 않는 대화'는 이 영화의 진짜 하이라이트입니다.
절교 후에도 어쩔 수 없이 얽혀버린 감정선은 관객에게 묘한 긴장과 슬픔을 동시에 줍니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묻습니다.
"모든 관계는 계속되어야만 할까?"
"이별은 반드시 누군가의 잘못이어야만 할까?"

파우릭과 콜름의 비극은 서로의 잘못이라기보다,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진 가치관과 삶의 방향성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오는 슬픔과 해방감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총평하자면,

 

"〈이니셰린의 밴시〉는 끝내 붙잡을 수 없는 관계에 대한, 그리고 인간 존재의 고독에 대한 가장 조용하고 아름다운 장송곡이다."

 

화려한 사건 없이도, 크고 작은 상처들이 쌓여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거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이토록 섬세하게 그린 영화는 드뭅니다.

 

누군가와 멀어지는 것, 누군가를 놓아주는 것, 그리고 혼자 남겨진 채에도 살아가야 하는 것.

 

이 영화는 그런 삶의 단면을 조용히, 그러나 결코 잊을 수 없게 관객의 마음에 새깁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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